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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여인입니다.

'화용월태(花容月態)'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자태를 종종 달에 비유하곤 합니다.
우리 주위의 할머님들은 고운 처자를 보면 '아이고, 어찌 이리 달덩이처럼 곱노' 하시곤 하지요. 산뜻하게 휘어진 여인의 눈썹을 보고는 초승달과 같다고도 합니다. 수줍은 듯 홍조를 띤 여인의 자태를 보면 수컷들은 은은한 달빛 아래 늑대인간이 되어 울부짖습니다. 풍만한 여인의 육체가 눈앞에 출렁하면 탐스런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듯하지요. 또한, 수애의 여인의 단아한 미소를 볼 때면 따스한 달빛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생기발랄한 미소녀의 대명사 역시 '세일러문'이지요. 모두가 달처럼 고운 여인들입니다.

그래서인지 달에는 왠지 아름다운 전설이 어려 있을 것 같습니다.
얼굴이 예쁘건, 마음이 곱든, 모든 아름다운 여인에겐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사연이 있을 것만 같듯이 말입니다.

간혹 사극 드라마를 보면 곱디 고운 궁녀를 보고 '항아님, 항아님'하고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참 듣기 좋구나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 궁금했지요. 찾아보니 달 속에 산다는 아름다운 선녀 항아(嫦娥)처럼 곱다는 말입니다. 역시! 달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다는 흐뭇한 전설이 전해져 오던 것이죠. 어쩐지 제가 달을 볼때마다 은근히 꼴리곤 끌리곤 하였습니다. 그게 모두 달 속의 아름다운 여인 항아(嫦娥)가 달빛에 추파를 담아 제게 보내온 때문이군요.

그런데, 전설의 여인 항아(嫦娥)는 저 머나먼 달 속에서 혼자 산다고 합니다. 옆에 토끼가 한 마리 있다, 아니다 제 구실은 못해도 남자가 옆에 있다더라, 말들이 많지만 모두 어여쁜 여인이 혼자 사는 것을 두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찧어대는 입방정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우리 고운 항아(嫦娥)는 어찌하여 춥고 드넓은 그 곳[각주:1]에서 여태껏 독수공방하다가, 저 같이 비루한 놈에게까지 추파를 보내게 된 것일까요? 그 사연이 궁금해졌습니다.

항아(嫦娥) 전설은 오랜 옛날부터 중국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각주:2]
흔히 '항아분월(嫦娥奔月, 달나라로 날아간 항아)'의 고사라고도 하는데,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대체로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철학서 「회남자(子)」란 책에 소개된 내용에서 취한 듯합니다. 하지만, 회남자의 내용도 어디서 들은 것을 옮겨 적었을 것이고, 여기에다 살을 붙인 각양각색의 버전이 워낙 많이 전해져 오는 지라, 어떤 이야기가 완전한 원형이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버전에 기초한 글 두 개를 골라서, 제 멋대로 짜집기를 좀 해보았습니다.

* 인터넷 검색결과 다음 두 글이 볼만 하더군요. 멋대로 짜집기해서 죄송합니다.  - <항아는 밤마다 수심이다><항아, 달로 도망간 그녀>)

옛날 중국의 하夏나라 요堯 임금 시절, 태양이 열개 떠올라 지상에 난리가 났다. 열개의 태양은 모두 하늘님(天帝)의 아들들로서, 세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들이다. 원래는 하루에 한명씩 떠올라야 하나, 하루는 장난기가 동하여 열명이 동시에 떠오른 것이다. 요 임금은 하늘님(天帝)에 부탁해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하늘님은 자신의 아들들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고통받게 되자 화가 났다. 그래서 신(神)의 신분이었던 ‘예羿)’를 지상으로 보내 규칙을 어긴 아들들을 혼내주라고 했다.

막상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예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자 무척 화가 났다. 그래서, 활을 무척 잘 쏘았던 예는 열개의 태양을 화살로 차례차례 떨어뜨렸다. 태양이 모두 없어지면 그것도 큰일이라, 요 임금은 화살을 하나 감추고 태양은 하나가 남았다. (다른 이야기로는 - 마지막 남은 태양 하나는 죽을 힘을 다해 서쪽으로 도망가 살아 남았다. 너무 빨리 도망쳐 이날은 하루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이 되었는데, 이 날이 곧 동지冬至날이다.)

그러나, 하늘님은 자신의 아들인 태양을 아홉씩이나 죽여버린 데 분노했다. 명령이었다고는 하나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예를 벌하기로 마음먹고, 아내 항아嫦娥와 함께 인간 신분으로 강등시켜 지상으로 귀양보내 버렸다. 신에 비하면 인간은 비루하다. 때맞춰 먹어야 살 수 있었고,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자신이 늙고 추해져 가는 것이 못견디게 괴로웠다. 항아는 못 견뎌했고, 예도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예는 불사약을 구하러 곤륜산의 여신 서왕모에게 갔다. 다행히 서왕모는 인간세상을 구원한 예를 기특하게 여겨 불사약 두 알을 예에게 주었다. 한 알을 먹으면 죽지 않는 신선이 되고, 두 알을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 다시 신이 될 수 있다. 한 알 씩 나눠먹으면, 두 사람은 영원히 지상에서 신선으로 살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온 예는 항아嫦娥에게 좋은 날을 잡아 서로 한알씩 나눠 먹자며 잘 보관해 두라고 하고는 사냥을 나갔다. 그러나 항아는 단지 불로불사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다시 선녀가 되어 이 지긋지긋한 인간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알을 모두 집어삼켰다. 마침내 항아는 다시 선녀가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 가게 되었다. 예는 하늘로 올라가는 항아를 보며 화살을 쏴서라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항아는 하늘님께 자신의 파렴치한 행동을 들키고 말았다. 하늘님은 괘씸한 항아를 그 마음만큼이나 보기 흉한 두꺼비로 만들어 하늘 나라에서 제일 춥고 광막한 '광한궁(廣寒宮, 넓고 추운 궁전)'이라 불리는 달에 가둬버렸다. 항아는 뒤늦게 후회하여 매일 지상의 남편을 내려다보며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자, 하늘님께서 항아에게 토끼 한 마리와 절구를 보내 주었다. 그때부터 항아는 토끼를 시켜 불사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불사약을 만들면 예에게 보내 주어서 조금이나마 죄를 씻기 위함이다. 그래서, 달에는 토끼가 오늘밤도 쉴새없이 약방아를 찧고 있다. (토끼가 등장하지 않는 버전도 많습니다. 또, 항아가 두꺼비로 변하지 않고 그냥 월궁에서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살았다는 버전도 있습니다.)

한편, 예는 지상에서 인간들을 도우며 살다가 죽어서 태양의 신이 되었다.


이런! 제 기대와는 달리 항아 전설은 원래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이군요.
간단히 말해서, 항아는 남편이 먹을 불사영약을 훔쳐먹고 달로 도망간 여인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하늘님에게 벌을 받아 두꺼비로 변하였다니, 달 표면의 울퉁 불퉁한 크레이터가 항아의 곰보 피부였다는 이야기군요.

실망스러웠습니다. 벽 너머로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는 절세가인을 상상하며 부푼 마음으로 건너가 보았더니, 웬 볼썽 사납고 추하게 생긴 늙은 부인이 앉아 있더라는 연암 박지원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까요? 암만 해도 제 실망감이 훨씬 클 듯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였건만, 오히려 인간의 욕망에 관한 우리의 자화상을 보고만 것 같아 씁쓸해지기까지 합니다.

  벽 저쪽에서 가끔 여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가냘픈 목청에 교태섞인 하소연이 마치 제비나 꾀꼬리가 우짖는 소리 같다.

 
'아마 주인집 아가씨겠지. 필시 절세가인일 게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장난삼아 방 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쉰 살은 넘어 보이는 부인이 평상에 기대어 문 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생김새가 볼썽 사나운 데다 추하기 짝이 없다.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넨다. (이하 생략)
                                                                 -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上」 중에서
                                                                     
(박지원 지음, 고미숙 김진숙 김풍기 엵고 옮김 / 그린비)

 
아무튼, 저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했던가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달을 보면 아름다운 상상에 젖어들기 마련이고, 그 상상 속에서 보고픈 여인은 '도둑년' 항아가 아니라 슬픈 사연을 안고 달에 갖혀버린 비운의 여인입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녀를 떠올리면 어느듯 제 마음밭에선 콩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 저너머 달나라까지 닿지요. 그러면, 저는 콩나무를 타고 달나라로 올라가 못된 토끼를 해치우고 항아를 구해 오지요. 자, 이제 항아가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 가지 못하도록 선녀옷만 잘 숨겨두면 됩니다. 성공입니다! 이젠 저도 더이상 결혼 못하는 남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항아 전설은 점점 아름다운 이야기로 각색되어 온 듯합니다. 오히려 예가 포악한 폭군으로 그려지고, 항아는 예에게서 불사약을 빼앗아 세상을 구원한 여인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또는, 예와 항아의 아름다운 사랑에 항아를 해꼬지하는 불청객이 끼어들고, 항아는 어쩔 수 없이 불사약을 먹고 하늘로 올라가 달의 신이 되었고, 예는 나중에 태양의 신이 되었답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바라만 보며 그리워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랑의 버전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이지요. 그래서인지, 유명한 중국 현대 무용극 <분월>도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로 각색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제가 항아를 달에서 구해온다 한들 제 여인이 되긴 글렀군요. ㅠㅠ

마침, 지난 7월 20일(미국 현지시간)은 달착륙 40주년이 되는 날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저보다 선수친 놈들이 꽤 됩니다. 뭘 알고 지은 이름인지 모르겠으나 하필이면 태양신 '아폴로'의 이름을 붙인 미국의 유인 우주선들은 항아를 구해 오려고 6번이나 달에 올랐습니다.[각주:3] 중국인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달탐사 프로젝트명을 '창어 프로젝트(嫦娥工程)'라 이름 붙이고는, 지난 2007년 달 탐사용 위성 '창어 1호'를 쏘아 올렸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명은 '선조우(神舟)', 즉 '신의 배'라는 뜻입니다. 달의 신 항아를 찾아서 태워 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이러다가 내 마음 속의 항아님마저 다른 이에게 먼저 빼앗기고 마는 것이 아닌지요. 끝내 결혼 못하는 남자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개똥밭에 굴러도 현실 속의 여자를 찾아야지, 달만 보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요...크윽...OTL)

연일 계속된 장마와 흐린 날씨에 항아님을 못 본지 오래입니다.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에 제 마음은 나날이 우중충해져만 갑니다. 항아님의 환한 얼굴이 그립습니다. 가끔은 그 미소 제게만 보여 주세요. 그러면 제 마음도 활짝 웃을 겁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1969년 달에 처음으로 착륙했던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에게, 휴스턴의 나사(NASA) 지상기지는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한다.

“달에 예쁜 중국 아가씨가 산다는 얘기가 있다. 커다란 중국 토끼도 있다고 한다. 아가씨 이름은 ‘창어’인데, 4천년 전에 남편한테서 불사약 훔쳤다가 달로 쫓겨났다. 토끼 이름은 잘 모르겠고, 계수나무 아래 있다더라. 한 번 있는지 봐라.”

이에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마이클 콜린스의 답변이 걸작이다.

“오케이, 바니걸스(토끼소녀)를 한 번 찾아보겠다.”

물론, 항아와 토끼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니걸스도 없었다.

                                                          - '항아, 달로 도망간 그녀' 중에서 (김외현 기자, 한겨레 블로그)

 


나의 항아님들 (수시로 바뀝니다.....)



< 뱀다리 한 토막 >

▶ 더보기...

 

  1. 항아가 사는 월궁을 '광한궁(廣寒宮)'이라고 한답니다. 넓고 추운 궁궐이란 뜻이지요. 우리나라 남원의 '광한루'도 이를 본따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중요한 등장 인물인 예(羿)가 동이족의 영웅이라 하여, 항아 전설이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전설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3.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 이후 인류가 달에 발을 디딘 것은 1972년까지 총 6번입니다. (아폴로11호, 아폴로12, 아폴로14,아폴로15, 아폴로16, 아폴로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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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즐거운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