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표준어 규정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작년 11월경에 있었던 헌재 공개변론 관련 기사를 보고서입니다. 기사를 보는 순간 곧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고등학교 이후 십 수년을 서울, 경기도에서 살았지만 저의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은 별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촌놈들에겐 흔할 법한 가슴아픈 사연도 몇 개 있던지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싶었거든요.
여담으로 제 개인적인 사연 하나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저의 첫 직장 이사님(여성분)이 어느날 저와 이야기 하던 중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OO씨, 처음 OO씨 입사했을 땐, 난 OO씨 말하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구, 뭐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알아듣고 있지만...." 휴, 뭐 그랬습니다....어쩌겠습니까....OTL
그런데, 어웨이 경기를 치르고 있는 저야 그렇다 치더라도, 갱상도 토박이끼리 결혼해서 경상도 땅에서 잘 살고 있는 제 친구의 마눌님 이야기는 좀 의외였지요. 천상 경상도 여자인 제 친구의 마눌님은 명절때만 되면 조용한 여자로 변신을 한다고 합니다. 뭐라꼬? 그럴리가? 놀란 저는 그 이유를 듣고선 가슴이 짠해져 왔습니다. 말투가 무식해 보일까봐 그렇다고합니다. 모인 친척들 중에 또래의 서울여자가 있어서 입을 열면 비교가 된다고 하네요.......아......(그렇지 않아, 오히려 솔직하고 유쾌한 매력이 흘러 넘친다고...친구 마눌님한테 이런 말 하기엔 좀 멋쩍긴 하지만...)
그러면서 저에게 하는 말이, 제가 꼭 경상도 여자와 결혼해 주기를 바란답니다. 지금 이 친구와 저를 포함해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친구들이 5명 있는데, 그 중 3명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마눌님이 서울, 경기도 여자입니다. 다같이 모이면 사투리 때문에 주눅이 들터라 평소에 친한 저라도 경상도 여자를 맞아들여서 자기 입장을 좀 살려달라는 거지요. 아아, 이 무슨 터무니 없는 사연입니까? 누가 이 유쾌하고 솔직한 여인에게 이런 터무니 없는 고민을 안겨 준 것인가요?
아무튼, 이처럼 사투리로 인해 남모를 아픔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 현행 표준어 규정 제1장 제1항>,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규정은 울고 싶은 마음에 뺨까지 때리는 격이지요. 솔직히 저는 현행 표준어 규정이 이렇게 되어 있는 줄은 지금껏 전혀 몰랐습니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보니 묘하게 기분이 찜찜하더군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이라....끄응....친구의 마눌님 고민이 법적으로 보자면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었네요. 이런........
뭐라꼬?! 우리가 무식한 쌍놈이라꼬?!!
실제로, 작년 11월에 있었던 헌재 공개변론에서 표준어 규정 위헌을 청구한 청구인측 변호인은 다음과 같은 변론을 했다고 합니다.
-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라면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냐
또, 이런 변론들도 있었다고 하지요.
- 또 각 지역어는 해당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소산으로 우열이 있을 수 없는데도 표준어를 서울말로 한정한 것은 문제
- 청구인들에게 익숙한 지역어를 버리고 서울말로만 교육 받게 하는 것은 정당한 교육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
심지어, 피청구인측의 반론에 대해 재판관마저 다음과 같은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 교양있는 사람이 쓰지만 서울말이 아니거나 서울말을 쓰지만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는 교양있고 서울말을 아무리 쓰더라도 현대말이 아니면 표준어가 아닌 것이냐
하지만,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현행 표준어 규정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 사용 인구,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게 기본권 침해라고 하기 어렵다
-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는 만큼,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는 기준 역시 합리적
- 표준어를 강제하는 범위는 공적 언어생활의 최소한의 범위여서 일상의 사적 언어생활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휴.......고마 우짜겠노.
인자부터 우리같이 사투리 쓰는 천한 것들은 아무리 용을 써바도 교양인은 못 대는기다.
국가에서 정한 법이다. 운명인갑다.
※ 법적 판단에 대한 논쟁을 제기하는 건 아니고, 사투리 쓰는 촌놈 입장에서 그냥 가볍게 웃자고 쓴 글입니다.
【 관련 신문기사 링크 】
- 왜 교과서엔 사투리 쓰면 안되나 (표준어 규정 헌재 공개변론 관련 기사, 08년 11월 14일자, 한국일보)
- 서울말 표준어 규정은 합헌 (헌재 헌법소원 기각 관련 기사, 09년, 09년 5월 29일자, 한국일보)
[ 관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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