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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순신 장군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동서고금을 통털어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접해 보았지만, 충무공 만큼 대단한 능력과 심지를 갖춘 분을 찾아 보질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충忠' 이란 관점에서 공을 능가할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선조 임금의 끝없는 의심과 시기로 모진 형신을 당하고 백의종군까지 한 마당에, '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라며 죽을 자리를 찾아 나서다니요. 기가 질릴 정도입니다. 당연히 저라면 엄두도 못낼 일이요, 그러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한편, 저는 이순신 장군의 '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라는 장계를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우리들 직장인이 생각 나거든요. 주인이 아닌 종으로 일하는 자의 숙명이랄까요, 윗사람을 모시다 보면 거의 매일 먹먹한 심정이 되고 마는 것이 우리들 직장인의 일상적인 생활입니다. 그렇지만 또 매일매일 변함없이 내 자리를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왜일까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주인이 아닌 종으로 일할 때는 충忠을 다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 충忠알아 주는 이가 없더라도 자신만은 알겠지요.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그 마음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자 나름의 자존심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하늘의 뜻이 내게 닿는다면 또 알아주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충忠은 생전에 선조 임금이 그 마음을 끝내 알아 주지 않았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만인의 마음을 얻어 '불멸의 이순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미천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라고 하셨지만, 공께서는 오히려 죽어서 더더욱 감히 만인이 업신여기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가 되셨지요.

저는 이것이 참 슬픕니다. 우리들 직장인은 이순신 장군만큼 위대하지도 않지만, 그 충忠만은 흉내내어 살아 가고 있습니다. 헌데, 역사를 보면 이순신 장군 뿐만 아니라 충신치고 살아 생전에 충忠의 대상으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는 경우가 없습니다. 모두가 비장한 죽음을 맞이한 후, 후대에 이르러서야 만고의 충신으로 존경받는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비루한 우리들도 회사에 충忠을 다하다 버림을 받으면, 후대에라도 그 뜻을 기려주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슬프지만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비루한 우리 범인들 생각에는 죽고 나서 누가 알아준들 뭣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또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것이 다름 아닌 충忠이기 때문이겠지요.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라는 말에는 비장한 결의만이 담긴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것은 담담한 마음인 게지요. 충忠으로 살아가는 자의 숙명이라 하겠지요.

충忠을 숙명으로 하는 그 길을 한 점 흔들림 없이 걸어가신 이순신 장군. 마지막까지 신하로서, 무장으로서 올곧은 삶을 지키신 그 위대함은 제가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
하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웅은 카이사르입니다. 정치가, 장군, 개혁가, 행정가, 연설가, 작가로서의 다재다능함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관용'이나 수많은 여자들을 꼬셔낸 탁월한 플레이보이 재능은 제가 감히 따르고 싶은 인간적 매력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루비콘강을 건널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이 너무 부럽고 좋습니다. 카이사르와 같은 '파격의 인간'으로서 극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이쯤에서 제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존경하는 위인보다는 좋아하는 영웅의 삶을 흉내내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삶은 존경해마지 않지만 그 한결같은 고고함은 비루한 저로선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또한, 주군을 탓하지 않는 헌신적인 충忠의 길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하지만, 교활한 저의 머리는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고 속삭입니다. 반면에, 카이사르의 역동적인 삶을 보고 있노라면 제가 언제나 배고파하는 열정이 가득 느껴집니다. 교활한 제 머리가 이해타산을 따지기도 전에 제 마음이 앞서서 그 열정에 끌려들어 갑니다. 왠지 그 길의 끝에서는 카이사르와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해도 후회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면 저는 또다시 이순신 장군의 충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입니다. '신에겐 아직 갚아야 할 12개월 할부가 남아 있사옵니다.' 당장은 이것이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런 우리들 모습에 무력해지고 슬퍼지려 하기 전에, 우리는 이것을 충忠이라 부르고 싶은것이지요. 다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루비콘 강을 건너는 카이사르의 모습을 꿈꾸고 있을 겁니다. 이것을 반역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때가 되면 주사위는 던져질 뿐이지요.

제게도 주사위가 던져
지는 그 날이 꼭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時朝廷以舟師甚單,不可禦賊,命公陸戰.
시조정이주사심단,  불가어적,  명공육전
이 때 조정에서는 수군이 숫자가 너무 적어 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공(公:이순신 장군)에게 육지에서 싸울 것을 명했다.

公啓曰,
공계왈
공께서 장계를 올려 말하기를,
 


自壬辰至于五六年間,賊不敢直突於兩湖者,以舟師之扼其路也.
자임진지우오육년간,  적불감직돌어양호자,  이주사지액기로야
임진년 이래로 5~6년간 적이 감히 양호(兩湖 : 충청, 전라)로 직접 돌격하지 못한 것은 수군[舟師]이 그 길을 막았기 때문이었나이다.

今臣戰船尙有十二,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
금신전선상유십이,  출사력거전,  즉유가위야.
지금 '신(이순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적을) 막아 싸운다면, 아직 할 수 있사옵니다.(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今若全廢舟師,則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  此臣之所恐也.
금약전폐주사,  즉시적지소이위행이유호우달어한수.  차신지소공야.
지금 만일 수군을 모두 폐(廢)하면 적은 곧 이를 다행으로 여겨 양호의 오른쪽[湖右 : 임금이 북에서 남으로 바라보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서해 바다를 오른쪽이라 하였다]을 따라 한수(漢水 : 한강, 즉 도성)에 이를 것이오니, 이는 신이 두려워 하는 바입니다.

戰船雖寡,微臣不死,則賊不敢侮我矣.
전선수과,  미신불사,  즉적불감모아의.
전선(戰船)이 비록 그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순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 이순신 장군,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전 이후 수군을 폐하려는 선조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다.
                       이후 명량해전에 임하시니 왜구들과 13대 133의 맞짱을 뜨시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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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즐거운 사자